삶이란 그림을 그릴 때

-혜천 이태영

내가 그려온

삶의 작은 조각보들이

수채화처럼 맑아 보이지 않을 때

심한 상실감, 무력감에 빠져들게  되고

가던 길에서 방황하게  된다.

 

삶이란

그림을 그릴 때

투명하고 맑은 수채화가 아닌

탁하고 아름답지 않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수채화를 그리다가 그 그림이

조금은 둔탁한 유화가 된다면 또  어떠하랴

그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모습인  것을

 

-’행복이 흐르는  쉼터’에서-

 

굿모닝~!!!!!!

처음부터 인생이라는 그림을 망치게 그리겠다고 붓을 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잘 그려보겠다고 조심조심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합니다.

뜻하지 않게 죽쑤는 색갈이 칠해져서 속상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한 번이면 그래도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두 번, 세 번,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확 꾸겨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럴 때에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면 또 다른 모습의 그림이 되어  있을 때도 있고

오히려 그것이 발상전환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미술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동란 시절, 화가 이중섭은 버려진 담배 은박지에 철필로  눌러서

새로운 장르의 그림을 만들어 냈습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할 때 또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절대자의 섭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형통이 아니라 절대자의 뜻대로 되는 것이 바른 형통입니다.

눈물

박정희의 흐르는 눈물. 혁명 50년
어느덧 5.16 혁명이 일어난지 반 백년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1차 5개년 경제 계획을 의욕적으로 세워 놓고 나라에 돈이 없어 추진 할수가 없었다. 미국에 요청한 차관도 거절 당했다. 마침 서독에서는 산업이 부흥되면서 노동력이 필요 했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 7천명을 서독에 수출했다. 1964년 12월 8일 박대통령은 돈을 구하러 서독수상 에르하르트와 정상회담을 했다. 에르하르트 수상은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어려웠던 독일 경제를 일으킨 경제 대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에게 말했다. “각하 우리를 밀어주세요 우리는 군인입니다. 우리도 독일처럼 분단국입니다. 라인강의 기적처럼 우리도 경제를 살려 차관을 갚겠습니다”. 에르하르트는 대답했다. “각하 이승만 대통령 때 한국에 두번 갔었는데 산이 많던데 그러면 경제발전이 어렵습니다. 대동맥을 뚫으세요 독일도 산이 많았는데 1932년 본에서 쾌른까지 아우트반(고속도로)을 건설했고 1933년에 집권한 히틀러가 아우트반을 전국적으로 확장건설한 것이 경제부흥의 동력이 됐습니다. 각하께서도 내일 그 아우트반을 갈 것입니다. 히틀러는 정치에는 실패했지만 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포크스바겐(국민차)을 만든것도 히틀러고 철공장을 만든것도 히틀러였습니다. 각하도 고속도로를 만든 다음 자동차 물동량을 늘리고 제철공장도 만드세요. 그리고 일본과도 국교를 맺으세요 지도자는 과거보다 미래를 중요시하고 앞을 봐야합니다”. 박정희는 수상의 말을 듣고 있다 말했다.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했는데 어떻게 손을 잡겠습니까? 에르하르트는 놀래면서 “아직도 사과를 않했나요?” 그렇습니다. “제가 사과하도록 주선해 보겠습니다(얼마후 이본은 사과 했다)”. 이 대화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혁명으로 집권한지 3년만에 듣는 이 에르하르트의 독일 경제 부흥에 대한 에르하르트의 권고는 박정희에게 크게 감명을 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나간 족적을 살펴보면 에르하르트가 이야기 한 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만 같다. 이 대화를 통역한 것은 독일에 유학해 독일 제1호 박사(경제)가 된 백영훈(80)박사이고 지금 은한국산업연구원장이다. 박영훈박사는 기자 인터뷰에서 박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수상과 같이 벤스에 타고 아우토반(고속도로)을 160 킬로미터(시속 100마일)씩 달리면서 아우토반에 대해 크게 감명을 받았고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면서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돈 꿔달라는 말을 되풀이 했는데 눈물을 하도 많이 흘리니까 에르하르트 총리는 고만 우시라”면서 손수건까지 내 주었다고 그 당시를 회고 했다. 일행에는 당시 장기영 경제부총리, 이 동원 외무부 장관, 이후락 비서 실장도 있었는데 아우토반을 달리다 차에서 내려 아우토반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동승한 독일 정부의 의전실장에게 건설계획, 수리, 건설방식, 관리방법까지 꼬치꼬치 캐 묻고 통역관이 전해주는 답변을 손수 메모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는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을 한국에가서 실현 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했다고 한다. 결국 한국은 서독에 파견된 노동자 임금을 담보로 1억4천만마르크(3천만불)의 차관을 얻었다. 2년후 6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경부고속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 세웠다. 1968년 2월에 착공해 2년5개월만(1970년 7월)에 완공했다. 총 거리 428 km(107마일)로 경비는 km 당 1억원으로 총 429억원는이다. 세계 최단 공사 기록도 세웠다. 박정희가 혁명을 한지가 벌써 50년이 되었고 1917년에 출생해 고단한 삶을 살다 1979년에 김재규에 의해 생을 마쳤다.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 하기 두달전인 8월에 박대통령 62회 생일에 선물하기 위해 스위스 명품(파텍) 순금 시계 2만불짜리를 주문했지만 11월4일 박정희 생일을 열흘 남겨두고 10월 26일에 선물하겠다고 한 사람이 시계를 받을 사람을 죽였다. 김재규는 점을 많이 본(사람을시켜서) 사람으로 점쟁이들 사이에 잘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상담역이었던 경암스님은 김재규 사건으로 워싱턴으로 망명해 보림사에 있었는데 경암스님은 박정희 상은 매상이라며 운명은 박어흥 박어종이라고 했다. 스스로 권좌를 일으켜 세우고 권좌를 스스로 잇지 못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김종필은 독수리 상으로 먹이를 찾아 하늘을 빙빙돌며 자신을 먼저 노출시키지만 스스로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이라는 것이다. 매상의 박정희는 숨어 있다가 사냥하는 매처럼 혁명을 할수 있는 상이라는 것이다. 혁명 50년에 즈음해 김종필 전 총리는 기자들의 방문을 받았고 회고 적인 인터뷰를 했는데 그 중에 새로운 것은 천기를 루설한 백운학 이야기다. 혁명의 시작은 젊은 장교들이 썪어문드러진 장군(똥 별)들을 거세하자는 정군운동에서 시작해서 혁명으로 발전하게 됐는데 이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옷을 벗게 되었다. 김종필과 육사 동기 중에 석정선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혁명전 일요일에 김종필을 찾아왔다. 그에게 김종필은 너 혁명같이하자 했는데 나 못하겠다 해서 알았다 못해도 좋으니 말내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석정선은 운수업을 했는데 사고가 자꾸나니까 나더러 같이 유명한 관상쟁이한테 가보자고 했다. 두 사람은 종로 5가에 있는 제일 여관으로 백운학을 찾아 갔다. 석정선은 차례가 와서 대청마루에 올라가 백운학앞에가서 앉아 있었고 나는 저쪽 복도에 앉아 있는데 백운학이 석정선은 안보고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됩니다”하고 소리쳐서 내가 뭐가 되느냐 했더니 허—하고 웃는거라 “천하를 뒤집으려하는데 됩니다” 그래서 아니 사람죽이지 말라고 딱 잡아 뗐지. 그래도 계속허허—하고 웃데 그러고 석정선한테는 그거 바퀴 달린것 팔어 이번엔 사람 죽여 이러데 “내가 그말 듣고 오싹했어(쪼집게)” 어떻게 운수업을 하는 것을 알고 그랬는지—-. 혁명 성공하고 내가 백운학을 데려다 저녁을 먹였는데 88세넘기겠어요 그러더그만 (김종필은 지금85세) 그러면 내가 천수한느거지 하고 웃렀다고 한다. 백운학은 선지적인 예언자이긴 한 모양이다. 세례요한도 인자가 올것을 요단강가에서 새털옷을 입고 예언 했다. (한국민속연구원 제공 20110519-제239호)

돈과 정상회담

돈과 정상회담 통일대통령 김정은 박근혜와 소통요구했다

나라의 정상들이 민족의 숙원인 통일에 대한 역사적인 국사를 논하기 위해 만나자는 데 돈을주면 만나고 안주면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명박대통령은 2009년 경축사에서 북과 대화와 협력을 할준비가 돼있다고 한지 1주일만에 김대중 조문차 온 조문단이 조문을 끝내고도 가지 않고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하겠다는 의지가 있음을 간곡히 알려 왔다. 그 결과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북측 김양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비밀회담을 했다. 여기서도 북측은 식량 비료 등 5억불을 요구했고 그 후속 회담이 그해 11월 개성의 한 여관에서 열렸다. 북측 원동연 통일전선부부장이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까지 체출하기도 했지만 대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비밀회담은 결과 없이 결렬됐다. 북은 더이상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2010년1월 성전을 거론하며 남북한계선(NLL)에 해안포를 쏘며 위협했고(2010년 1월) 연달아 천안함폭침(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11월)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끝까지 천안한과 연평도사건을 명분없이 면죄부를 주지 않았으며 남북정산회담도 진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행사는 하지 않겠다며 임기를 마티게 됐다. 이와같은 일연의 사건들은 곧 18대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박근혜정부가 대북정책을 스립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대통령실 천영우 수석비서관은 정상회담 대가로 5-6억달러를 주는건 크게 문제가 되않았다며 정상회담의 대가를 치르며 남북정상회담을 한다해도 북이 핵을 포기 한다든지 아니면 우리 남한을 해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그는 연평도 포격을 당할 당시 “교전규칙의노예”가 노예가 돼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고 후회스럽다고 했다. 교전규칙은 받은 만큼만 대응하라는 것이다. 이기려면 받은만큼만으로는 않된다. 공격을 받는 입장에서 누군가가 어느만큼 얻어 맞았는지 측량을 해야 할 것이고 측량한 만큼 또 대응하라고 공격부대에 명령을 해서 그만큼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얼마전에 박근혜당선인 인수위원회 국방통일분과위원회 최대식위원이 북한과의 비밀접촉을 주선했다는 이유로 국정원과 시비가 일어나 사표를내고 수리 됐다고 한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통일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가장 풀기어려운 민족적인 과제이고 여러 대통령이 들고 났지만 아무도 이렇다할 해결책이나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했다해도 별무 신통하지 못했다. 하지만 꼭 우리세대가 해결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하는 대사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려면 통일 대통령이 돼야한다. 한편 김정은이 18대 박근혜대통령취임식에 북한인사를 초청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는 것이다. 꽁꽁얼었던 어름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당선인이 김정은 측근 인사를 초청해서 북한인사가 취임식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더구나 동시에 경제에대한 이야기도 겸해서 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북측의 대남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인 “통일전선부”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해외동포사업부”등이 박당선인 측에 취임식초청가는성을 타진해 왔다고 여권 핵심관계자도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사상 처음 있는일이고 김정일 때도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당선인측은 부담스러워하고 아직은 그런 계획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초청타진하는 과정에서 남북간 공동투자에 대한 논의도 일부 이루어 졌다고 한다. 최종적인 결정은 당선자에 달려 있다. 성사가 된다면 남북관계가 의외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될는지도 알 수없다. 100%통합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유세를 했는데 이 또한 그 일환이다. 북측인사가 오겠다는 것을 간첩이 아닌이상 거절할 필요가 없다고 보인다. 한 쿠텡이부터 꺼나가는 것도 후에 크게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이 초청해달라는 대는 나름대로 큰 뜻이 있어 보인다. 그냥 취임식에만 참섯하고 가지는 않을 것은 분명하다. 당선인이 초청했으면 좋겠다. 많은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카고 문경입니다. 문경애 들어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 좋은 글 많이 보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토론의 마당으로 시사 종교 문화 평론 등으로
서로 교통하고 사교하고 힘내고 하는 마당으로 이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설익은 밥 – 이태영

설익은 밥

 

아이와 함께 문제집을 풀던 엄마가 자기 뜻대로 아이가 따라주지를 않자
답한지 답안지를 보여주면서 소리쳤습니다.

“너는 왜 이것도 못하니? 이렇게 하면 되잖아!”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문제를 다시 풀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또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하는게 아니잖아, 이런 식으로 풀란 말야.”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곁에서 지켜보던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어미야, 그러다 밥 안 되겠다.”

그러자 며느리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아니, 어머니 아직 식사 때가 안 되었는데요.”

” 그 말이 아니라 우리 손주 머리는 아직 뜸도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며느리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너는 먹는 밥은 잘하는데 사람 밥은 못 짓는 것 같구나.

얘야, 밥도 되기 전에 뚜껑을 자꾸만 열어보면 어떻게 되겠니?”
“물론 밥이 설익게 되죠.”

“그렇다면 너는 지금 애를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니?

좀 진득하게 지켜보려므나. 저도 애써서 하고 있는데
무언가 형태도 생기기 전에 자꾸 흐트러뜨리면 되겠니.”

 

-보시니참좋았더라2006/10-

 j08103027

굿모닝~!!!!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학습에 대한 진도 역시 다릅니다.
어떤 이는 꾸준하게 성장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한꺼번에 확 늘었다가 답보상태로 오래 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답보상태였다가 급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성장 속도 자체가 느린 이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대중가요나 복음송은 금방 습득이 됩니다만 성가대 찬양곡을 익히는 것은 한참 걸립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익혀야 자신있게 소리가 나오고 높은 음도 낼 수 있습니다.
바둑은 특별한 개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지만 전국대회 8강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자기 분야가 있고 잘  안되는 분야도 있습니다.

빠른 성장을 원하는 것은 누구나의 소망이지만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지만은 않습니다.
학습진도도, 돈 버는 일도, 때가 있는 법이고 애를 써도 진전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조물주는 각자에게 때를 주셨고 그릇대로 주셨기 때문에 인정하고 자족하는 삶을 갖는 것이 소중합니다.

가을의 기도 – 이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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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

 

기도하고 눈을 뜨면
내 안의 모든 욕망과 거짓과 어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랑과 진실과 평화가 자리잡게 하소서
그리고 언젠가는 작은 열매 몇 개라도 맺게 하소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길을 걸어갈 때,
지난 날 그의 나쁜 기억은 모두 잊게 하시고
내 마음의 집에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그를
오늘 새로운 기대와 설렘으로 만나게 하소서.

이제는 가게 하소서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서는 길을 걷게 하시고,
나로 인해 상처입은 사람을 향해서는 용서를 구하게 하소서
이제는 그들 곁으로 가 부끄럽게 손 내밀게 하소서.

열매가 아니라 가지를, 가지가 아니라 뿌리를,
뿌리가 아니라 이미 떨어진 꽃과 잎을, 꽃과 잎이 아니라
햇살과 수분과 농부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모든 수고에 감사하게 하소서.

이 가을에 나를 더 낮추어 겸손하게 하시고,
나를 더 멀리 보내어 쓸쓸하게 하시고,
나를 더 고독하게 하여 침묵하게 하시고,
나를 더 외롭게 하여 사랑하도록 하소서.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중에서-

굿모닝~!!!!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어도 무심했던 마음이 이제는 가을을 타나 봅니다.
이번 가을은 왜 이리 쓸쓸함이 더하는지요.
가을이 가을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이 가을이어서 인가 봅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겠고, 앞으로 이룰 것을 점검하면서
쉬어가는 여유도 있어야겠습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 기억 속에 남아있는 확연한 잘못, 머리 조아려 용서를 빕니다.

한치 앞도 못보는 인간이기에 앞으로도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겠지만,
저의 본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어떡하든 선하게 살려고 애써 왔다는 것, 이것 하나는 기억해 주십시오.
오늘도 이런 저런 사유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아침에 제가 아는 모든 분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기를 나의 신께 빌어 봅니다.

우물과 마음의 깊이 – 이태영

우물과 마음의 깊이

보이지 않는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압니다.

돌이 물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d0005491_474aae020ddf9

내 마음의 깊이는 다른 사람이 던지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흥분하고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깊고 풍성하면 좋습니다.

이런 마음의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갈증이 해소되며 새 기운을 얻습니다.

-’행복이 흐르는 쉼터’에서-

굿모닝~!!!!

체질적으로 자극적인 말에는 반사적으로 발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아서 좋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좋은 친구를 얻고자 하면 발끈하는 성질을 죽여야 합니다.
또한 말도 생각없이 툭툭 내뱉지 말아야합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기에 앞서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했을까? 내가 한 말에 문제는 무엇일까?’
를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면 남들과 부딪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깊은 울림이 있는 마음을 소유하면 좋은 친구들이 내 곁에 모일 것입니다.
좋은 친구들을 갖고 싶지 않으세요?……..

내 이름은 허진수

내 이름은 진수 다 .
허씨 성을 가진 집으로 입양을 해왔으니 허 진수가 된다 .
형은
`얘가 참 순해요 얌전하고 ,나에게 기대며 눈을 꼭감고 왔어요’라고
칭찬을 해 주었지만 천만에 콩떡이다 ,
흔들리는 차안이라 멀미가 날것 같아 형이란 사람의 가슴에 몸을 꼭 기대고 왔다 .
그래도 그리 좋게 말해 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
엄마가 된 여성이 나를 꼭 껴안아 준다 .
좋은 냄새가 나긴해도 나는 얼른 도망을 쳐서 구석을 찾아 숨었다
‘이리와 괞안아’라고 말해주지만 그래도 낯설고 불안하다 .
낮선 환경 탓에 오줌까지 싸고 말았다 모두들 난리다
카펫을 닦고 소리나는 이상한 물건을 갖고 와서 갖다대고
시끄럽고 무서워 공포분위기다.
밤이되니 모두들 나를 두고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어둡고 낮설고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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