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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고 싶어도 넣어갈 것이 없는 옷이  수의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염습할 때 시신에 입히는 옷인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 이유를  말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수의에 큼지막한 주머니를  만들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기에 아까운 물건들을  담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승과 작별하는 길에 입는 수의를  통해

인간은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돌아갈  때

빈손으로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합니다.

가진 것 많은 자나 없는 자나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이나

그러지 못한 사람이나

죽어서 누구나 주머니가 없는 수의를 입고 

빈손으로 저승길로 향합니다.

돈 있는 사람은 비단으로 된 수의를 입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값싼 수의를 몸에 감싼  채

이 세상과 이별합니다.

우리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입니다.

하루 세 끼 밥먹고 잠자고 늙고  병들어서

떠나는게 인생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갈 때는  똑같이

손에 쥔 것 없이 떠납니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오늘도 아둥바둥 살아갑니다.

가진 자는 더 갖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없는 사람은 곳간을 채우기 위해 안간 힘을  씁니다.

조금이라도 더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숨통을 옥죄이기도 합니다.

욕심 때문에 먹어서는 안되는 검은 돈을  받아

쇠고랑을 차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제  오늘의

뉴스가 아닙니다.

-’행복이 흐르는  쉼터’에서-

 

굿모닝~!!!!

어렸을 때 땅따먹기 놀이를 즐겨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게임,

땅을 많이 차지하면 왠지 뿌듯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진짜 내 땅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 다만 등기가 되어 소유권이 인정되는 것만 빼고  말입니다.

어머니의 친척 중에 소유권이 불분명한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선친 서거 후 우리 집 등기도 감언이설로 빌려 달라고 해놓곤 꿀꺽 해버린  분입니다.

그 일 때문에 어머니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사셨고 늘 아들인 제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지막은 암병의 비참한 고통 중에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떠나기에 앞서 아들들에게 우리 집 것은 돌려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답니다.

그러나 돌려 받지 못했습니다. 자기 소유로 있던 것을 돌려줄 아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빈손들고 가는 인생인데 왜 남을 고통 중에 몰아넣으면서 그렇게 욕심을  냈을까요?

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그런 일을 겪으면서 저는 철학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재산이 날라가서 6개월에 한 번씩  이사하다시피

정말 어렵게 수 십년간 살았지만 그일로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인생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

모세는 인생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이 얼마이건 간에 다른 이들의 기쁨되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