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흐르는 눈물. 혁명 50년
어느덧 5.16 혁명이 일어난지 반 백년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1차 5개년 경제 계획을 의욕적으로 세워 놓고 나라에 돈이 없어 추진 할수가 없었다. 미국에 요청한 차관도 거절 당했다. 마침 서독에서는 산업이 부흥되면서 노동력이 필요 했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 7천명을 서독에 수출했다. 1964년 12월 8일 박대통령은 돈을 구하러 서독수상 에르하르트와 정상회담을 했다. 에르하르트 수상은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어려웠던 독일 경제를 일으킨 경제 대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에게 말했다. “각하 우리를 밀어주세요 우리는 군인입니다. 우리도 독일처럼 분단국입니다. 라인강의 기적처럼 우리도 경제를 살려 차관을 갚겠습니다”. 에르하르트는 대답했다. “각하 이승만 대통령 때 한국에 두번 갔었는데 산이 많던데 그러면 경제발전이 어렵습니다. 대동맥을 뚫으세요 독일도 산이 많았는데 1932년 본에서 쾌른까지 아우트반(고속도로)을 건설했고 1933년에 집권한 히틀러가 아우트반을 전국적으로 확장건설한 것이 경제부흥의 동력이 됐습니다. 각하께서도 내일 그 아우트반을 갈 것입니다. 히틀러는 정치에는 실패했지만 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포크스바겐(국민차)을 만든것도 히틀러고 철공장을 만든것도 히틀러였습니다. 각하도 고속도로를 만든 다음 자동차 물동량을 늘리고 제철공장도 만드세요. 그리고 일본과도 국교를 맺으세요 지도자는 과거보다 미래를 중요시하고 앞을 봐야합니다”. 박정희는 수상의 말을 듣고 있다 말했다.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했는데 어떻게 손을 잡겠습니까? 에르하르트는 놀래면서 “아직도 사과를 않했나요?” 그렇습니다. “제가 사과하도록 주선해 보겠습니다(얼마후 이본은 사과 했다)”. 이 대화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혁명으로 집권한지 3년만에 듣는 이 에르하르트의 독일 경제 부흥에 대한 에르하르트의 권고는 박정희에게 크게 감명을 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나간 족적을 살펴보면 에르하르트가 이야기 한 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만 같다. 이 대화를 통역한 것은 독일에 유학해 독일 제1호 박사(경제)가 된 백영훈(80)박사이고 지금 은한국산업연구원장이다. 박영훈박사는 기자 인터뷰에서 박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수상과 같이 벤스에 타고 아우토반(고속도로)을 160 킬로미터(시속 100마일)씩 달리면서 아우토반에 대해 크게 감명을 받았고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면서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돈 꿔달라는 말을 되풀이 했는데 눈물을 하도 많이 흘리니까 에르하르트 총리는 고만 우시라”면서 손수건까지 내 주었다고 그 당시를 회고 했다. 일행에는 당시 장기영 경제부총리, 이 동원 외무부 장관, 이후락 비서 실장도 있었는데 아우토반을 달리다 차에서 내려 아우토반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동승한 독일 정부의 의전실장에게 건설계획, 수리, 건설방식, 관리방법까지 꼬치꼬치 캐 묻고 통역관이 전해주는 답변을 손수 메모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는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을 한국에가서 실현 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했다고 한다. 결국 한국은 서독에 파견된 노동자 임금을 담보로 1억4천만마르크(3천만불)의 차관을 얻었다. 2년후 6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경부고속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 세웠다. 1968년 2월에 착공해 2년5개월만(1970년 7월)에 완공했다. 총 거리 428 km(107마일)로 경비는 km 당 1억원으로 총 429억원는이다. 세계 최단 공사 기록도 세웠다. 박정희가 혁명을 한지가 벌써 50년이 되었고 1917년에 출생해 고단한 삶을 살다 1979년에 김재규에 의해 생을 마쳤다.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 하기 두달전인 8월에 박대통령 62회 생일에 선물하기 위해 스위스 명품(파텍) 순금 시계 2만불짜리를 주문했지만 11월4일 박정희 생일을 열흘 남겨두고 10월 26일에 선물하겠다고 한 사람이 시계를 받을 사람을 죽였다. 김재규는 점을 많이 본(사람을시켜서) 사람으로 점쟁이들 사이에 잘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상담역이었던 경암스님은 김재규 사건으로 워싱턴으로 망명해 보림사에 있었는데 경암스님은 박정희 상은 매상이라며 운명은 박어흥 박어종이라고 했다. 스스로 권좌를 일으켜 세우고 권좌를 스스로 잇지 못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김종필은 독수리 상으로 먹이를 찾아 하늘을 빙빙돌며 자신을 먼저 노출시키지만 스스로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이라는 것이다. 매상의 박정희는 숨어 있다가 사냥하는 매처럼 혁명을 할수 있는 상이라는 것이다. 혁명 50년에 즈음해 김종필 전 총리는 기자들의 방문을 받았고 회고 적인 인터뷰를 했는데 그 중에 새로운 것은 천기를 루설한 백운학 이야기다. 혁명의 시작은 젊은 장교들이 썪어문드러진 장군(똥 별)들을 거세하자는 정군운동에서 시작해서 혁명으로 발전하게 됐는데 이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옷을 벗게 되었다. 김종필과 육사 동기 중에 석정선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혁명전 일요일에 김종필을 찾아왔다. 그에게 김종필은 너 혁명같이하자 했는데 나 못하겠다 해서 알았다 못해도 좋으니 말내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석정선은 운수업을 했는데 사고가 자꾸나니까 나더러 같이 유명한 관상쟁이한테 가보자고 했다. 두 사람은 종로 5가에 있는 제일 여관으로 백운학을 찾아 갔다. 석정선은 차례가 와서 대청마루에 올라가 백운학앞에가서 앉아 있었고 나는 저쪽 복도에 앉아 있는데 백운학이 석정선은 안보고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됩니다”하고 소리쳐서 내가 뭐가 되느냐 했더니 허—하고 웃는거라 “천하를 뒤집으려하는데 됩니다” 그래서 아니 사람죽이지 말라고 딱 잡아 뗐지. 그래도 계속허허—하고 웃데 그러고 석정선한테는 그거 바퀴 달린것 팔어 이번엔 사람 죽여 이러데 “내가 그말 듣고 오싹했어(쪼집게)” 어떻게 운수업을 하는 것을 알고 그랬는지—-. 혁명 성공하고 내가 백운학을 데려다 저녁을 먹였는데 88세넘기겠어요 그러더그만 (김종필은 지금85세) 그러면 내가 천수한느거지 하고 웃렀다고 한다. 백운학은 선지적인 예언자이긴 한 모양이다. 세례요한도 인자가 올것을 요단강가에서 새털옷을 입고 예언 했다. (한국민속연구원 제공 20110519-제239호)